합창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 임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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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회의에서 인터뷰를 해보라는 제안을 승낙하고 어떤 분인지 물어보니 간단한 소개서를 보내주었다. 인터뷰를 위해서 임재옥 님에 대해 기초적인 정보를 받아서 읽어보고 이 분은 합창단 활동을 통한 음악활동가로 얘기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렵사리 일정을 맞추어 1월21일 일요일 저녁6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아래 인터뷰의 주된 내용은 현재 활동하는 합창단 3곳과 우리 시대의 아픔이 있는 사회 현장 활동, 향린교우로서의 활동 모습이다. 인터뷰 내용중에는 음대를 가서 성악을 전공을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지 않은 사연과 좋은 부부의 구체적인 얘기도 있으나 내용이 길어져 아쉽게도 생략하였다.  


Q : 평화의 나무 합창단, 4.16합창단, 향린교회 성가대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하나의 활동도 쉽지 않은데 3개의 합창 활동을 하게 된 경위나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합창단 활동은 무엇인가요?

A : 평화의 나무 합창단은 현재 10년이 된 합창단입니다. 한겨레신문 산하에 통일문화재단이라고 재단이 있는데 그 재단에서 만든 합창단이에요.제가 2008년에 2기로 들어갔어요. 원래 전공은 국문학이고 그 동안 국어강사를 했었는데 그 일을 하면서도 삶 속에서 부딪혀보는 그런 걸 해보고 싶어서 한신대 사회복지과로 대학원을 갔는데 주로 공부한 게 상담, 가족치료 쪽이고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합창을 시작을 했어요.

Q : 평화의 나무 합창단의 활동 모습을 소개해 주세요.

A :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사회적인 연대를 경험하게 됐어요. 쌍용자동차와 같은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현장을 찾아가서 합창을 했어요.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거예요. 세월호 참사가 나고 유가족 분들과 조금씩 연대를 해왔는데, 세월호 500일 때 평화의 나무 합창단이 그분들을 모시고 기획공연을 했어요.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을 했는데 넓게 열린 광장에서 무대도 디귿(ㄷ)자로 해서 그분들을 가운데로 모시고 같이 합창을 했어요. 감격스럽고 가슴이 짠한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기획공연을 한 계기로 합창단원 몇 명이 그분들과 계속 교류를 했는데 가보니까 굉장히 어려운 가운데도 조그마한 노래모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의 노래모임과 평화의 나무 합창단원 몇 명이 노래연습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고 일주일에 한번 씩 연습을 하다 보니 노래모임에 참석하는 평화의 나무 단원이 10명 정도 된 거예요. 함께 하면서 유가족 부모님들도 숫자가 늘어나고 해서 4.16합창단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지금까지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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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자연스럽게 4.16 합창단이 만들어지고 같이 활동하게 되는 설명을 듣게 되었네요. 4.16합창단은 지금 구성원이 어떻게 되나요?

A : 저는 두개의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고 저 말고도 평화의 나무 합창단에서 고정적으로 10명 정도가 4.16합창단에 가고 있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신학생들이 있고 일반시민들도 같이 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된 것 같아요.

Q : 평화의 나무와 4.16합창단의 활동 내역을 들어보면 여러 곳에서 공연 요청들이 들어올 것 같은에 어떤가요?

A: 말씀 하신대로 많은 곳에서 공연 요청이 있어요. 요즘 주로 요청이 오는 현장은 하이디스, 유성기업, 파인텍 목동 굴뚝도 있고 평택 쌍용자동차 등인데요. 저는 두개의 합창단 활동을 하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많아요. 여러 곳에서 평화의 나무에도 요청하고 4.16합창단에도 요청하고 그래서.
하이디스 같은 경우는 이번 주는 평화의 나무 이름으로 가고, 그 다음주에는 4.16합창단 이름으로도 가고 합니다.   


Q : 평화의나무 합창단 공연을 유투브로 보면 규모가 꽤 되던데요. 그 분들이 현장에 모두 갈수는 없을 것 같은데 어떤지요?

그리고 합창을 준비하는 과정과 공연장에서의 공연, 현장에서의 공연은 아무래도 다를 텐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A : 단원들이 대부분 일반시민들인데다가 낮에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현장 공연에 모두 참석하기는 어려워요. 전체 단원이 70명 정도 되는데 현장 공연은 많이 가면 60명 정도이고 적게 가면 30-40명 정도의 단원이 참석합니다.
평화의 나무가 모인 취지가 어려운 사회 현장과 연대하고 그 어려움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부담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현장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열린 공간이 대부분이라 음악적인 측면에서 포기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요.
특히 지휘자 입장에서는 현장 나가서 음악의 수준이 떨어지는 모습을 누군가가 동영상을 찍어서 바로 유투브에 올리게 되면 '그게 진짜 우리 실력이 아닌데.' 생각하게 되고 현장 다니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장에 나가야되니 지휘자가 못나갈 때는 단원들 내부에서 지휘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대신하고 반주자가 못 나갈 때는 반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해서 나가 게 되요. 어떻든 단원이 많으니까 가능한 일 같아요.


Q : 모두가 같이 현장 공연을 못하는 경우가 잦다보면 내부적으로 이견이 표출되어서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예들 들면 현장 공연의 경우 내부 논의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A : 그런 불편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한겨레신문 재단에서 만든 합창단이라 대부분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합창단에 들어오고 현장에 익숙한 단원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현장 지향적인 활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같은 진보라도 내부적으로는 스펙트럼이 무척 다양해요.
광화문 촛불문화제 할 때는 중앙의 큰 무대에 많이 서기도 했지만 가끔 게릴라 콘서트처럼 광화문역 8번 출구 같은 곳이나 그 밑의 지하도에 내려가서도 공연을 계속했어요. 매주 반주 없이도 했는데 그런 자리에서도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를 했어요. 저희 합창단이 하는 노래가 대부분 옛날에 민중가요를 편곡해서 합창곡으로 하는데 그래서인지 광화문 촛불문화제에서 호응이 좋았어요.
제가 뭔가를 혼자하기에는 좀 어려운 성격인데 만약에 제가 합창단을 안하고 혼자 무슨 사회활동을 한다든지 혼자 현장에 나가서 연대를 하는 것은 잘 못할 것 같아요. 합창단에 속했기 때문에 합창이라는 덩어리에 묻어가는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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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합창을 통해서 현장을 나간다는 게 어찌 보면 뜻을 같은 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은 곳을 함께 가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함께 부름으로 노래하는 사람들이나 듣는 사람들이 함께 호응하는 신명나는 현장인 것 같습니다. 교회 식으로 표현하면 은혜로운 시간들이 되는 것 같은데. 합창단 활동을 하시면서 감동적이거나 좋았던 모습이나 기억나는 거 있으신가요?

A : 개인적으로 세월호 500일 기획공연이 굉장히 기억에 남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이디스 현장을 꽤 많이 갔었는데 기억에 남아요. 하이디스 분들이 지금은 청운동에 있는데 이 전에는 동화면세점 앞에서 했어요. 그런데 가보면 거기 앉아 계신 분들 보다 저희 합창단이 더 많아요.
음향장비도 별로 좋지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쟁을 하고 있는 그 분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갑니다. 외부에서 누가 와서 연대를 할 때 그 분들끼리 있을 때보다 힘을 더 받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한번은 ‘함께 살자 농성촌’이라는 그런 팀이 있는데 그 분들은 농성하는 곳마다 가는 그런 분들이거든요. 저희가 그 분들을 크리스마스 시즌에 연습 장소인 한겨례신문사에 모셔서 크리스마스 파티나 송년회 대신에 공연을 했었어요.
얘기를 할수록 기억이 자꾸 떠오르네요. 용산참사 1주기 때 저희가 가서 공연을 했는데 그때는 변변한 무대 같은 게 없으니까 트럭을 무대삼아서 트럭위에 합창단이 다 올라가서 노래도 하고. 제대로 된 무대에서 하는 큰 공연보다는 현장을 찾아 가서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한 그런 공연이 더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Q : 이런 합창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거 있으세요? 지금보면 나름대로 다 특색이 있지만 불현듯 이런 노래모임(합창단)이 있었으면 괜찮겠다고 생각되는.

A :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요. 평화의 나무 합창단은 상당한 수준이 있으면서 메시지도 있는 그런 합창단이고 4.16 합창단의 경우는 어떤 스토리가 있는 합창단이잖아요. 많은 분들이 4.16합창단을 보는 순간 벌써 짠한 느낌을 갖게 되잖아요. 각각의 특징을 잘 갖고 있는 두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저로서는 다른 무엇을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Q : 가족들이 모두 음악 배우고 있거나 활동을 하는 음악가족인 것 같은데요?

A : 딸은 작곡을 전공하고 지금은 합창단을 하지는 않지만 4.16합창단을 하다가 독일로 유학을 갔어요. 아들도 독일에 유학 가 있는데 첼로 전공입니다. 남편은 평화의 나무와 4.16합창단을 같이 하는데 남편은 감수성이 예민해서 4.16 합창단에 가면 우느라 노래 연습을 잘 못해요. 계속 울기만 해서.
가족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저도 자유방임 상태로 애들 교육하는 스타일이라 애들이 공부를 계속하리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기회가 와서 두 아이 모두 독일에 가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어요.
 

Q : 향린교회에서는 성가대를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가대를 하려면 아침 일찍 나와서 연습하고 예배 끝나고 늦게까지 연습해야 하는데, 3가지 합창 활동 중 하나인 성가대는 어떻게 하고 계시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A : 저는 성실하지도 않고 신앙이 좋은 사람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고 성가를 부르면서 제가 받는 감동이 굉장히 소중한 부분이지요. 어찌 보면 이기적인 그런 것 때문에 성가대를 하는 거지 성실하거나 믿음이 좋거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시간에 딱 맞추어 연습하는 게 맞는 기질이 아니지만 공동체 내에서 노래하는 자체가 좋기 때문이에요. 세상 적으로 말하면 이게 취미생활일 수도 있는 그 정도인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저는 성가대 활동이 너무 재미있어요.


Q : 무슨 일을 하든지 재미있다는 게 제일 중요하지요. 향린교회 생활은 어떠세요?

A : 제가 2015년 8월에 향린교회에 나왔고 올해에 신임집사 받았거든요.(인터뷰를 했던 날 공동의회에서 감사로 선임됐다는 후문) 향린교회에 오기 전에는 시댁에서 다니는 교회가 있어서 그 교회를 20년 넘게 다녔고 작은 아이가 분당에 있는 예고를 다니면서 거기서 3년 정도를 다녔어요.
저의 성향이나 교회의 사회적 역할들을 생각할 때 향린교회가 일치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굉장히 가고 싶었습니다. 작은 아이가 다니던 교회에서 기성교회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고 교회를 안다니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향린교회를 가라고 했고, 남편도 다니던 교회의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에 다른 대안적인 교회를 찾자 해서 가족이 모두 향린교회에 나오게 됐어요. 향린교회는 굉장히 건강한 교회인거 같아요. 지금 교회 내 문제로 논란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이런 모습조차도 지향하는 목표를 가기위해서 구성원 간에 이견을 조율을 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에요.


Q : 향린교회에서 성가대와 사회부 활동을 하면 예배와 선교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A : 저는 잘 모르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중요한  일인 것 같더라고요.

Q :  성가대를 하면 주일 중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활동도 하려면 주저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성가대와 교사는 하는 사람만 계속 하는 경향도 있고요. 그런데 성가대를 하시면서 사회부 활동을 하신다는 것이 쉽지 않은 모습 같은데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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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사회부활동은 노래가 주가 아니고 현장의 집회에 참석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사회부내에서 논의되는 것들을 같이 실행하게 되면 같이 하는 정도입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는 현장에 일주일에 한 번씩 도시락 싸들고 가는 일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한광호 열사 집회에 평화의 나무 단원으로 몇 번 갔었는데 참여해보니 그 현장에 굉장히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처음에는 희여에서 간다고 얘기를 듣고 가봤는데 이후 자세히 들어보니 길목의 활동이라고 알게 됐어요. 누가 하던지 꼭 필요한 활동이라면 열심이 참석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고 싶을 뿐 입니다.


Q: 도시락 싸들기는 윤선주집사의 노력과 정성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하는데 같이 해보니 어떠신가요?

A : 윤선주 집사는 이전부터 했는데 저는 작년 1월부터 같이 해서 이제 1년 됐어요. 유성기업 현장에 계신 노동자들은 계속 바뀌더라고요. 해고자들이 있고, 조합원도 있는데, 공장이 아산에도 있고 영동에도 있다 보니 아산에 계신 분, 영동에 계신 분, 이런 식으로 조를 짜서 현장을 지키는 거예요. 처음에 갔을 때는 어색하고 그랬는데. 집에 두고 온 가족 얘기를 하다가 서로의 마음이 풀리고 공감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어린 분들이 많아서 취업, 교육관련 얘기를 하다가보니까 더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Q : 유성기업 최근 상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정부가 바뀌어서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을 줄 알았을 텐데요.

A : 많이 섭섭하죠. 정권이 바뀌는데 가장 큰 노력을 한 분들인데 이러한 문제를 자꾸 뒤로 미루는 것 같아서. 지금 유성기업 현장의 동력이 굉장히 떨어진 상태예요. 찾아오시는 분들도 뜸하고 노동자분들이 섭섭한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대통령 한명은 바뀌었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검찰이나 이런 쪽은 바뀌지 않았고
단번에 바뀌기에는 아직 자본의 힘이 너무 크고 그런 이유들로 인해서 그 분들은 지금까지 7년 동안 투쟁을 해오셨는데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으니까 답답한 상황이죠. 자칫 지금의 상황은 그 분들이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는 시점인데 같이 밥 먹으면서 정부 욕하면서 공감대를 확인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려고 노력하는게 방문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Q : 향린교회는 활동 프로그램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는지요?

A : 성가대와 사회부 활동 다음으로 하고 싶은 것은 생명, 환경 활동입니다. 1990년대 초에 환경운동을 하면서 그때 제 삶의 많은 것이 바뀌었거든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생각이 다소 약해졌었는데 다시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고 앞으로 생활도 굉장히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있는 자동차도 팔고 머리도 염색을 안 하려고 흰머리로 다니면서 생활을 가볍게 해보려고 합니다.

Q : 향린교회에 나온 지 3년이 되었는데 예배 중에 기도는 해보신 적이 있는지요?

A : 기도는 못해봤고 말씀읽기는 해봤어요. 평신도 설교를 들었을 때 되게 감동이었어요. 어른들 뿐 아니라 푸른이들이 하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향린의 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대단한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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