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과 기적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한 나현호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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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과 기적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한 나현호 조합원 
 

길목인에 <포토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는 나현호 조합원을 만나러 가는 날은 날씨가 추웠습니다. 길목인에서 그의 글과 사진을 보았지만 일면식도 없는 그를 만나러 가면서 ‘어떻게 알아보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가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나현호 조합원은 자신이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일이 의아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우리 길목 식구의 소소한 이야기를 싣는 것이 방침이라고 이야기 했더니 안심이 된다고 말하며 처음 만난 사이이지만 ‘길목 조합원’이라는 고리 하나만으로 마음을 활짝 열고 그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고 살아갈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습니다.

Q : 길목회원들께 자기소개를 좀 해주시겠어요?
A : 저는 69년생이고 안산에서 육쌈 냉면집을 경영하며 겸해서 다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올 해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 그리고 아내와 살고 있습니다.

Q : 대한민국의 입시제도가 상당히 힘든데 둘째 아들이 대학에 합격한 소감이 어떠신가요? 
A : 며칠 전 애기엄마가 (그는 아내를 이렇게 불렀어요) 엉엉 울며 작은애가 아*공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려왔어요. 애기엄마가 우는 일이 잘 없는데…… 저도 마음이 울컥했어요. 고맙고 예쁘더군요. 
작은애는 한창 부모 손을 탈 때 우리부부가 자영업을 시작해서 많이 못 데리고 다닌 것이 안쓰럽고 마음도 무겁고 부채의식 같은 것이 있었어요. 큰애는 말 수도 없고 평범한 반면, 작은애는 고등학교 다닐 때 귀여운 사고를 몇 번 쳤어요. 예를 들면 큰 맘 먹고 친구들과 공원에 모여 술을 마셔보자고 하고 막 시작하려는데 누가 신고를 하는 바람에 경찰이 와서 잡혀간다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서 의도치 않은 일 때문에 부모가 학교 회의에 불려가기도 했어요. 우리부부는 쫓아다니며 도와 줄 수 없으니 스스로 하도록 하자는 생각을 했지요. 자신도 공부를 별로 안 좋아하고 해서 대학은 별로 기대를 안했는데 논술 시험을 치고 나오더니 자신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더니 합격 소식을 알려와서 더 기뻤어요.

Q : 자영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 직장생활을 하다가 IMF 때 퇴직을 하고 퇴직금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날리는 전형적인 길을 걸었어요. 계약직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즈음 퇴사 후  돈까스집을 운영하는 후배 가게에 가 보았더니 손님이 바글바글하고 아주 당당해 보이는 후배모습이 직장에서 보아왔던 그 모습이 아니었어요. 그 후 6개월 정도 퇴근하면 그 후배 업장에 가서 기술을 배웠어요.
그 뒤로도 사업을 하다가 투자금을 날리기도 하고 신규 브랜드 런칭을 반복하다가 지금 하고 있는 육쌈 냉면집을 하며 자리를 잡았어요. 젊을 때는 힘으로 세웠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도 자라고해서 사업의 성공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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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청년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A : 저는 89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학교는 거의 안 갔어요. 저는 믿음은 없었지만 성당의 형, 누나를 따라 ‘가톨릭 민주청년회’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신념을 갖고 했다기 보다는 동네 형들이 좋아서 모임에 나가고 활동했어요. 시청에서 시위를 하고, 백골단을 피해 달아나던 기억도 나네요. 어느 날 시위에 나가는데 제가 플랭카드조였어요. 그런데 우리 앞에 백골단이 있는 거예요. 플랭카드를 펼쳐야 시위를 시작하니까 너무 두려웠지만 플랭카드를 펼치고 전진하는데 바로 백골단이 장비를 갖추더니 달려왔어요. 공포스러웠어요. 그 후 가민청 운영위원들이 체포되고 조직이 와해되었어요.

Q : 그 이후는 활동을 이어가지는 않았나요?
A : 가민청이 해체 될 즈음에 선배들이 다 끌려갔는데 한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서 가민청 사무실에 있는 책들을 불태우라는 부탁을 했어요. 사무실로 가서 책들을 가져오는데 참 공포스러웠어요. 집에 와서 그 책들을 다 불태웠는데, 저는 그때 그 두려움이 창피했어요. 제 스스로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형, 누나들을 따라다니며 했던 것이라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하기에는 열심히 했던 선배들께 미안할 정도예요. 저는 발만 담갔어요. 그런 기억들이 제 스스로는 흑역사라고 생각해요.

Q : 그러면 그 때 활동이 그 후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A : 한동안 잊고 살았어요. 정치에 관심을 두지도 않고, 결혼하고 나서는 아이들에게까지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이 싫어서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했어요. 가끔 뉴스를 보며 잘못된 일에 비판을 하는 정도였어요. 사진반 활동을 계기로 다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Q :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 예전부터 사진을 하고 싶었는데 시작을 못하다가 사업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나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 사진을 배울 때는 저도 ‘장비병’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사진학교에서 홍영진이사장님을 만나고, 사진보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Q : 어떻게 길목 조합원이 되셨나요?
A : 사진학교나 사설학원은 개개인이 활동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이어지기 어려워요. 그런데 홍영진선생님과 권태훈 조합원등 그 기수들은 좀 다른 것 같아요. 홍이사장님은 조용히 어울리시면서 눈빛이 따뜻하시고 스승 같은 신뢰를 주셨어요. 제가 베트남에 관심이 있었는데 홍이사장님을 퉁해 길목에서 했던 베트남 평화기행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며 길목을 알게 되었어요. 신자가 아니라도 받아(?)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입을 했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더라도 꼰대는 되지 말자’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홍이사장님은 직장에서 만나본 기존의 어른과는 다르셔서 어른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주신 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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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길목인 포토에세이는 언제부터 쓰셨나요?
A : 일 년 조금 넘었어요.


Q : 나현호 조합원이 쓴 포토에세이에는 일본에 관한 내용이 많던데 특별한 까닭이 있나요?
A : 제가 역사과목을 좋아하고 일본에 대한 막연한 정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베와 경제전쟁이 시작된 작년 7월 이후부터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아직 여행을 잘 못해 보아서 일본도 안 가보았지만 장기적인 꿈 중에 하나는 한일 관계의 해법을 실마리로 삼는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사진도 일제의 흔적,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찾거나, 우리나라 지명, 우리 역사를 왜곡 한 일들에 관심을 두려고 합니다. 사진이란 것이 그냥 예쁜 것을 찍는 것이 아니니까 앵글 가는 것이 그런 쪽인 것 같습니다.  

Q : 사진에 대한 관심은 일상의 진부함을 벗어나보려는 마음에서 시작 하셨나요?
A : 몇 년 전 아내가 몸이 아팠어요. 전에 어머니가 암투병을 하셨는데 오년 뒤 아내가 아프니까 이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이 들어서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다음은 내 차례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성공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되고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사진을 시작 했어요. 막연히 멋있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체계적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전 정보 없이 그냥 찾아간 곳이 한계레 사진교실이었고 거기서 홍 이사장님과 길목에서 활동하고 있는 몇몇 분들을 알게 되었어요. (한겨레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거나 하는 인연도 없었답니다)

Q : 그래서 오늘 이 인터뷰자리에까지 오시게 되었네요. 기독교인들은 이런 경우 ‘하나님의 발길에 채였다’ 혹은 ‘하나님이 부르셨다’라고 합니다.
A : 하하 성당 신부님도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네 길이 그러니까 그 길로 가는 거야~” 라고.

Q : 포토에세이의 주제를 정하거나 사진 찍는 작업은 어떻게 하시는지, 특별히 관심이 많은 주제는 무엇인가요?
A :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사진을 시작 했기때문에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래서 뭐가 되었든 자주 찍어요. 직업 특성상 시간을 정해 놓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틈틈이 찍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이나 직장 근처에서 주제를 찾게 되고, 시선이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집은 하남 미사리 근처인데요, 미사리의 카페 촌이 사라지고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개발 때문에 소외받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아픔이나, 잊혀져가는 미사리의 과거나 미래 같은 것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가고 관심이 갑니다. 지난 포토 에세이 중 ‘고목’도 미사리 개발현장에서 찍은 사진이예요. 소외되는 작은 것들에 대해 자꾸 관심이 가는 까닭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사진 학교에서 일 년 주제가 주어지는데요, 2019년은 “분단의 표상”이었어요. 조별로 주제에 맞춰 지역을 찾아 사진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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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사진을 찍으며 기술적인 부분은 어렵지 않은지요?  
A : 사진이 전업이 아니다보니 기술적인 면에서 한계가 있어요. 제가 포토샵을 잘 못해요. 기계에 둔한 편이예요. 그래서 포토샵을 많이 안하고 절제된 미, 있는 그대로 과장 없이 보여주자는 생각입니다. .

Q : 나현호조합원이 쓴 포토에세이의 글도 짧고 절제된 표현이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 들던데  그건 필진들이 약속한 의도인가요?
A : 아니요. 필진들이 교류하거나 의논한 적이 전혀 없어요. 저는 시나 에세이나 그런 형식에 대한 생각없이 글을 씁니다. 포토에세이를 2018년 가을쯤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주제가 늘 고민이 되요. 주제를 생각을 하고 현장을 찾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메모 같은 것을 남기기도 합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 시선이라서 자유로운 것도 있지만 글을 쓸 때면 늘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제 삶에서 글 쓰는 것과 관련된 활동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요.

Q : 저는 나현호회원이 쓴 포토에세이를 읽으며 남다른 시선으로 장면을 읽어내는 사진과 글이 감동을 준다는 생각을 했어요. 포토에세이 쓰는 일에 대해 혹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라고 사족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A : 남루한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일동 웃음) 저는 지금도 제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고맙고 한 편으로는 행복합니다. 글을 쓰면 제일 먼저 아내에게 보여주는데 처음에는 “당신이 쓴 게 맞아?”라고 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잘 쓰는데?” 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면 제가 “진짜야?” 라고 되묻습니다. 이번 1월 포토에세이에 인용한 나태주의 시구처럼 ‘기적이란 것이 가까이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내 글을 읽어주고(좋다고 말해주는) 것이 기적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Q : 포토에세이를 쓰면서 나현호 조합원의 삶에서 바뀐 것이 있나요?
A : 사물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저는 꽃이나 들풀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 들풀을 보면 애잔하기도 하고 그렇게 피어있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위안을 받게 되요.

Q : 사진을 통해 길목을 알게 되셨는데요, 길목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A : 처음에는 길목이 기독교 단체인줄도 몰랐어요. 그 후 ‘기독교인이 아닌데 가입해도 되나? 성서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어느 정도 같이 할 수 있을까? 교회에 나오라고 할까?’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기독교인들에 대한 선입견이었죠. 그리고 길목이 진보적인 성격을 가진 단체인지도 몰랐어요. 지나보니 선입견이 깨졌어요.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서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교차하는 부분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난 12월에 길목 송년회에 참가했어요. 그때 길목 회원들을 처음 만났는데 회원들의 눈빛이 모두 편안해 보였어요. 그 자리에서 윤영수 이사장님과 ‘길목주(酒)사파’를 만들자는 농담 같은 이야기도 나누었는데요, 길목 조합원으로서 같이 고민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동참하고 싶습니다.

Q : 앞으로 꿈이 있다면요?
A : 마음이 안 맞는 사람들과 잘 지내보고 싶어요. 저는 무책임하고, 남을 혐오하고 성향이 자신과 다르다고 남을 공격하고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싫어해요. 제가 20년 가까이 사업을 하다 보니 특히 서비스직종이니 일종의 ‘감정노동’이죠, 장사라는 이유로 감내해야하는 손님들을 보면 못 참겠어요. 그러다보니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원래 안 그랬는데 누구를 만나도 이야기 할 수 있었는데 이제 사람이 무섭고 멀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좁아지는 것 같고 세상과 담을 쌓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것들을 극복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Q : 하시는 사업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A : 사업에 대한 꿈은… 지금도 공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는 공간, 쉴 수 있는 공간,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에 관심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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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다면 길목의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하며, 길목의 독서모임 영화모임들 같은 활동도 소개 했습니다. 나현호 조합원은 길목 회원들의 눈빛이 따뜻하고 편안하다고 했는데 사실 그의 눈빛도 따뜻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도 길목 조합원이니 마음 쓰는 방식이 다 같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길목인에 연재되는 포토에세이 뿐 아니라 길목의 다른 장면에서도 나현호조합원을 자주 만날 수 있다면 좋겠구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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