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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야단법석": 5대종단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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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여성을 말하다

posted Jan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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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88
글쓴이 황상희

유교, 여성을 말하다

 

 

선진국들이 근대화를 이룬 것은 산업혁명 100년, 정치혁명 100년, 교육혁명 100년 총 30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 세 가지 혁명을 교육, 산업, 정치의 순서로 30년 만에 이루어 냅니다. 최근 경제대국 10위 안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중 9위까지의 나라들은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 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유일하게 식민지를 당했던 나라인데 그 순위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오늘날 한류가 전 지구촌을 하나로 감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을 보기란 쉽지 않지요. 특히 오늘날 조선하면 자주 쓰이는 말이 '헬조선'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지옥같다는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심한 경쟁 위주의 사회이기에, 혹은 자살률 1위의 국가이기에 쓰이는 말입니다. 또는 '10선비'란 말 또한 그렇습니다. 이 말은 과도하게 격식을 차리면서 점잖은 척하는 꼰대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인터넷 용어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조선과 연관된 단어는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조선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철학자들이 정치를 한 나라이고, 임금에게도 공부를 시킨 나라입니다. 임금은 하루에 3~4번의 강의를 들어야 했습니다. 작은 나라라는 지리적 상황 속에서도 지혜롭게 정치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조선은 참 끔찍한 나라이죠. 더욱이 여성의 문제에 있어서 유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종교입니다.

 

오늘날 학자분들이 유교를 말할 때 여성 문제에 있어서 부정적인 시각이 특히 대부분입니다. 저는 유교와 여성의 문제를 좀 분리시켜서 보고자 합니다. 왜냐면 조선의 여성 문제를 접근할 때는 많은 복잡한 상황들이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 여성의 문제는 17세기에 급변하게 됩니다. 17세기 이전에 재산은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분배받았었죠. 그리고 제사 또한 여성이건 남성이건 돌아가면서 지냈어요. "다음번 제사는 누님 댁에서 해야 한다"는 편지글이 문서로 남겨져 있어요. 조선 전기는 남녀가 비교적 평등한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여성의 위치는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하죠. 상속은 남성인 장자에게만 되었으며 제사 또한 장자만이 지낼 수 있는 권위가 부여되기 시작해요. 그렇다면 물어야 하죠. '왜 17세기일까? 그 당시 조선에 무슨 일이 생겨서 그렇게 심한 사회적 변화가 올 수 있었을까?'라고요.

 

조선시대 일반인에게 보급되었던 가장 중요한 저서인 <삼강행실도>를 보면, 열녀의 전기에는 남편이 죽은 후 재가하지 않고 수절하며 제사를 정성껏 받들거나 시부모를 잘 공양한 유형이 69건(약 34%)으로 가장 많았어요. 광해조에는 487건의 열녀 가운데 404건(약 83%)이 임진왜란, 정유재란(1597) 시에 외적에게 잡혀 절개를 지키려다 살해되거나 자결한 유형입니다. 17세기를 기점으로 열녀라고 칭송받는 대상이 달라진 것이죠. 17세기 이전의 열녀는 재가하지 않고 시부모를 공양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17세기 이후는 자결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의 교육이 식민지를 당했던 경험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듯이 조선 또한 이긴 전쟁인 임진왜란은 기록으로 남겨놨지만 진 전쟁인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은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중에 자결을 택한 여성은 세계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폭력을 쓴 것입니다. 그나마 <삼강행실도>에 기록이라도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묘호란(1627) 때부터 청은 조선에서 많은 포로들을 잡아갔죠. 병자호란은 잡아간 인구수가 달랐습니다. 매우 많은 여성들이 청나라의 포로로 잡혀갔으며, 청나라는 조선에게 많은 여성들과 재물을 요구했습니다. 청나라의 포로 잡혀간 여성들을 구하기 위해 조선의 가족들을 재산을 팔아야 했습니다. 청나라 상인들은 여성들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들의 인신매매는 계속되었죠. 그리고 조선은 살아 돌아온 그녀들을 '환향년'이라 비하했습니다. 작은 나라가 가진 슬픔, 그 안에서 자신을 지켜낼 방법이 자결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록에 속환녀에 대한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켜내듯이 강대국의 폭력에 희생된 조선의 여성을 지켜내야 합니다. 자결의 풍습은 남성들이 일부러 성리학적 질서를 위해 여성들을 죽음으로 희생시킨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어떤 피치 못할 사건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사건 안에는 죽음으로 자신을 지킨 절절한 어떤 슬픔이 있죠. 그 슬픔이 웃음거리고 쓰이는 위악은 없애야 합니다. 왜냐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그 슬픔이 있었기에 가능한 나라였으니까요. 조선에서도 그녀들의 죽음을 기렸는데, 왜 오늘의 현대인들은 그녀들을 우스갯거리로 사용하는 것일까요?

 

남녀불평등은 조선에만 있었던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가 같았습니다. 그나마 17세기 이후에도 가정의 경제권은 늘 여성에게 있었다는 건 과거에 여권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가정의 곳간 열쇠는 늘 시어머니 손에서 며느리 손으로 물려줬습니다. 그리고 조선에선 생선과 채소는 여성들만이 상권을 확보할 수 있게 보호했습니다. 그나마 남녀불평들이 있었지만 가족 안에서 여성의 권리가 보호되고 있었고, 혹 남편이 없는 여성이 가장으로 일할 수 있도록 상권 보호가 이루어졌던 곳이 조선입니다. 조선의 여성들은 가정 내에서 손님을 잘 접빈하고 제사를 모시는 행위를 공적인 업무로 여기고 그러한 일상성에서 하늘에까지 자신의 정성이 닿을 수 있도록 수행하였습니다. 그 시대 안에서 자신을 무화(無化)시켜 자신이 머무는 영역을 경건하게 지켜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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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10, 20, 30대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와 시위문화를 주도했습니다. 10명 중 3명이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리고 12월 21일 '전봉준 투쟁단'(전국농민회총연맹의 트랙터 시위)의 '남태령 대첩'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연대하는 힘을 보여줬습니다. 시위에 참석하지 못한 여성들은 돈쭐(후원)으로 동참하는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이 여성들이 세계는 내가 돌보고 책임져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천명한 행위입니다.

 

12월 14일 윤석열탄핵이 가결되고 시위현장에 처음 나온 노래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습니다. 세계인들이 K-pop의 팬덤문화를 접하고는 하나같이 자신이 처음으로 소속감이 생겼다는 말을 했었다. 이 팬덤문화는 젊은 여성들의 전유물이었고, 그 안에서 익숙하게 '선결제 문화'화 SNS를 활용한 연대들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K-pop을 글로벌하게 만든 공신이면서, 이번 시위의 주체였습니다.

 

터키, 이란, 벨기에, 홍콩, 미얀마, 칠레, 태국 등등의 나라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한국어 노래가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류가 세계 각지의 사회와 만났을 때 벌어지는 화학 작용은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가장 역동적이고 급격한 변화입니다. 케이팝, 드라마, 영화를 비롯한 한국의 콘텐츠는 전 세계의 소비자들로 하여금 기득권의 권위를 버리게 만들고, 집단적 투쟁에 나서게 만들며, 자국 사회의 불평등을 향해 분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주는 태도, 나를 무화(無化)시킴으로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연대는 조선에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황상희 프로필.png

* 황상희 님은 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로 퇴계의 종교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유교걸로 평화고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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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5.01.13 By관리자 View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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