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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저물녘 하늘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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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12

posted Aug 0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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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오낙영
발행호수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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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굴바하르를 만나고 내 언어는 길을 잃고 말았소. 아, 나는 이제 혹독한 밤을 맞을 것이오.

아오슈나르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아오슈나르가 예쁜 꽃이라고 지칭했던 굴바하르를 처음 만난 것은 하란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였다. 그가 순회 전도사제1)로 미타니 지역의 곳곳을 다니며 사제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신도들을 만나고, 아직 아후라 마즈다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파할 때였다. 그때 굴바하르는 짓밟힌 야생초였다.

 

굴바하르는 카라이의 산속 마을에서 태어나고 결혼했다. 남편은 새로운 카나트(qanāt)2)를 건설하는 공사현장에서 죽었다. 수직갱을 파 내려가는 도중에 토사가 무너져 압사를 당했다. 수직갱은 그대로 굴바하르 남편의 무덤이 되었다. 조장(鳥葬)으로 육탈을 도모하지 못했으므로 그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상에 갇혀버렸다. 그것은 남겨진 굴바하르에게 큰 오점이 되었다. 그래서 가족과 마을의 원로들은 굴바하르에게 마을에서 떨어진 초막에서 보름달이 그믐달을 지나 초승달로 바뀔 때까지 죽은 남편을 위해 근신하고 기도하라고 결정했다. 그녀는 시숙과 조카에게 이끌려 초막으로 쫓겨갔다. 절망과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했다. 마을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그녀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제거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남편의 부재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다. 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던 그 밤, 그녀는 털 없는 몸뚱이를 가진 짐승의 습격을 받았다. 무서움에 떨며 이틀 밤을 꼬박 새웠던 그녀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졸음에 몸을 무너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메웠던 별조차 연기처럼 번져가는 구름의 장막 뒤편으로 물러가고 있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초막의 문은 짐승의 광포한 손에 뜯겨나가고, 곧바로 굴바하르의 겁에 질린 옷자락이 슬픈 탄식을 내뱉으며 찢겨졌다. 털 없는 짐승의 우악스러운 손이 굴바하르의 입을 틀어막았고 가벼운 몸뚱이를 거칠게 헤집었다. 그렇게 닭 우는 소리를 듣고는 희붐한 어둠 속에서 짐승은 곤한 몸을 누이며 말했다.

-쪼매만 참고 기다리레이. 곧 매파를 보낼 끼다. 내사 니를 가질라꼬 이래 했는 기라.

알고 보니 이 모든 일이 굴바하르에게 오래전부터 흑심을 품어 왔던 촌장의 조카가 꾸민 일이었다. 소리도 못 내고 오열하던 굴바하르는 몸을 일으켜 초막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초막 앞에 섬돌처럼 놓여있던 평평한 돌덩이를 겨우 집어 들고는 안으로 들어가 곯아떨어진 짐승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별들조차 숨을 죽이고 대지의 비극을 받아 적고 있었다. 굴바하르는 엄습해 오는 두려움에 잠시 정신을 놓고 서 있다가, 문득 알몸뚱이를 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짐승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길로 뛰기 시작했다. 마을을 등지고 정신없이 달렸다. 입에서 단내가 올라오고 구역질을 할 때까지 달리고 넘어지고, 또 일어나 달렸는데 떠오르는 아침 해를 안고 달린 것도 몰랐다.

쓰러져 있던 그녀를 발견한 것은 낙타 행상들이었다. 시체인가 하여 서둘러 지나치던 그들은 굴바하르의 신음소리에 의아한 생각이 들어 돌아와 그녀의 입에 물주머니의 주둥이를 대어 주었다. 굴바하르 행색을 유심히 살펴보던 사내 하나가 낙타 옆구리에 걸쳐져 있는 거친 야자 섬유로 짠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말라비틀어진 난을 가져다주었다. 굴바하르는 허겁지겁 난을 낚아채듯 받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도 도무지 자신의 처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며칠 사이에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던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어째서 낯선 남자들에게 부끄러움을 가질 겨를도 없이 걸인처럼 음식물을 받아먹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올라 흐느끼기 시작했는데, 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사내 하나가 낙타를 주저앉히더니 그녀를 번쩍 안아 낙타 등에 올려 앉혔다.

낙타 행상들은 굴바하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희끼리 낮은 목소리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곤 하는 것 같았으나, 낙타 등 위의 굴바하르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제 두려움 따위를 가질 수조차 없었다. 그녀도 그들에게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 털 없는 몸뚱이를 가진 짐승, 그러니까 촌장의 조카가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 자신을 옥죄고 있었기 때문에 물을 수가 없었다. 머리 위로 내리쏟는 듯한 작렬감도 아득하게 느껴질 뿐,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그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낙타 행상 하나가 이따금 물주머니와 굵은소금 몇 알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으나 비릿하고 밍밍한 물맛에 속이 뒤틀려 헛구역질만 나왔다. 굴바하르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의식은 언젠가 들었던 텡그리 무녀가 부르던 무가의 이해할 수 없는 반복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떠돌던 조음구(調音句)처럼 가물거렸고, 육신은 자신과 무관한 어떤 물체인 양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이따금 거칠게 바람이 불 때면 뿌리 뽑힌 관목이 정해진 방향도 없이 또르르 굴러가는 게, 꼭 하루아침에 처지가 급변해버린 제모습 같았다. 불현듯 열두세 살쯤에 죽은 엄마 생각이 났다. 분명치 않은 모습과 음성이 흐릿한 망각의 언덕 저 너머에서 힘겹게 일어서고 있었다. 그녀는 도리질을 쳤다. 부질없는 짓이라 느껴졌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 건너편에서 세상을 떠난 엄마의 영혼을 불러 무엇할 것인가. 한낮의 황무지 길은 길고도 길었다. 해가 지자 행상들은 먼저 낙타에게 물과 먹이를 주고 나서야, 자신들을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찻물을 끓였다. 굴바하르는 행상들에게서 좀 떨어진 곳에 한 떨기 관목처럼 앉아 있었다. 사내들이 차와 난 그리고 대추야자 말린 것 몇 개를 그녀 앞에 가져다주었지만,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사내 하나가 그런 그녀를 힐끗 보더니 주춤주춤 다가왔다.

-봐라, 먹을 수 있을 때, 좀 먹어두는 기 좋을 끼다.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주춤주춤한 발걸음으로 모닥불 옆 제자리로 돌아갔다. 바람 한 줄기가 먼지를 일으키며 그들 곁을 스쳐 빠르게 지나갔다. 그 끝으로 어둠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 밤, 굴바하르는 두 사내에 의해 치마 허리끈이 풀어졌다. 한 무리의 별이 쏟아져 내려 어둠 가득한 대지를 처연하게 빛내고 있었다. 그건 눈물 없는 건조한 절규였다.

다음날, 반나절을 더 가서 케르반 사라이3) 치고는 규모가 좀 작은 낙타 행상들의 숙소에 이르렀다. 사내 하나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가 옷차림이 남다른 남자와 여자와 함께 나왔고, 그들은 굴바하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하이고! 어데서 저런 반반한 가스나를 데불고 왔는가?

여자는 아주 만족스러워했고, 남자는 한 손은 뒷짐을 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역참의 기능과 대상들의 숙소를 겸하는 케르반 사라이의 주재관리인으로 명색이 제국의 하급관리였다. 그가 하는 일은 대상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면서 교역로를 관리하고, 그들로부터 원근 각지의 정보를 수집하여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 빌어먹을 낙타 행상들이 그렇게 굴바하르를 케르반 사라이에 노비로 팔아버린 거요.

아오슈나르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 양 흥분하고 있었다.

-개자식들!

아베스라가 추임새를 했다. 아오슈나르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웃었다. 그러더니 완강한 어조로 말했다.

-개새끼들이오.

-개자식이나 개새끼나!

아베스라의 거듭된 추임새에 아오슈나르가 크게 웃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크하하! 그렇지 않소. 자식이란 어휘는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으나, 새끼는 애초에 짐승에게 쓰기 위한 어휘인 것이오. 그러니 인신을 매매한 것들에게는 새끼라는 어휘도 과분한 거요.

 

케르반 사라이에 노비로 팔린 굴바하르는 그곳의 일을 배워 시작하기도 전에, 대인이라 불리는 관리인 남자의 몸종 아닌 몸종이 되어 시달렸다. 굴바하르를 더욱 견딜 수 없게 했던 것은, 관리인의 벗은 몸에서 나는 '털 없는 몸뚱이를 가진 짐승'의 체취 때문이었다. 지옥의 문이 열리던 순간의 몹쓸 기억이 자꾸만 되살아나 자신의 운명을 노골적으로 저주하게 되었다. 그녀가 자꾸만 야위어가며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어버리자, 관리인은 노골적으로 그녀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중점관리대상인 상인들을 위한 접대부가 되었다. 처음엔 짐승의 체취를 맡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작은 위안으로 여길 수 있었지만, 날로 피폐해져만 가던 영육은 생명의 심지 끝에서 겨우겨우 겨자씨만 한 불씨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병들어 눕고 달포가 지나자, 관리인은 하인을 시켜 케르반 사라이로부터 다섯 마장쯤 떨어져 있는 병자의 초막에 유기하도록 했다. 늙은 하인이 나귀가 끄는 원판으로 된 바퀴의 수레에 굴바하르를 싣고 병자의 초막으로 갔다. 오랫동안 사용한 적이 없는 움막이었다. 보통은 사람들이 접근을 꺼리는 곳이기도 해서 음산한 기운이 탁한 연무처럼 드리워져 있다고 믿어지는 곳이었다. 움막 안을 대충 치우고 나서, 늙은 하인은 새털처럼 가벼워진 굴바하르의 몸을 번쩍 안아 들어 건초가 깔린 바닥에 뉘었다. 그리고는 돌아서 나가려다 굴바하르의 신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꿈틀거리는 그녀의 하체를 보고 발치 아래에 무릎을 접었다. 잠시 짐승의 시간이 흘렀고, 늙은이는 물주머니와 난 몇 장을 던져놓고 돌아갔다. 돌아갔다.

병자의 초막에 흐르던 시간은 온전히 굴바하르 그녀의 것이었다. 꼬박 사흘을 꼼짝없이 누워있던 그녀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온몸을 쑤석거리던 통증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몸이 전에 없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정신도 맑아졌다.

 

-그녀의 병인이 인간, 아니 털 없는 몸뚱이를 한 짐승들이었던 거군요.

아베스라가 탄식했다.

-그렇소. 이들을 제도하는 게 가능하다 여기시오?

아오슈나르의 말에 곤고한 회한이 묻어 있었다. 아베스라는 마음이 아려왔다.

-시생의 법력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허나 시속의 언어로 풀어놓자면, 좆은 뽑아 석쇠에 굽고 불알일랑 훑어 찜해서 귀신들에게 내어줄 놈들이오! 아, 수도자의 입에서 이런 험한 말을 늘어놓기는 처음이오.

아베스라의 말에 아오슈나르가 빙그레 웃었다.

-그런 말을 하게 해서 미안하오. 나는 한때, 그런 부류의 인간은 죽음으로서만 구제할 수 있다고 믿었소.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서, 어둠의 영에 사로잡힌 인간은 그것을 통하지 않고는 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거요.

아오슈나르의 낮은 목소리가 한 시절의 결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베스라는 그의 삶에 흐르는 소수자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한때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요, 일상에서 나쁜 놈들을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합디다. 나쁜 놈들이란 걸 알게 되는 시점은 늘 어떤 일이 있은 직후라는 거요. 미리 알아내기는 참으로 참으로 어렵소. 그러니 그들을 미리 솎아내는 건 불가능했던 거요.

 

'사람이 본색을 드러내는 때는 말입지, 혼자 있을 때가 아닌 게라. 고요함 속에 있을 때는 더더욱 아니라 이 말입지. 다리를 저는 나그네가 밖에서 들어올 때, 모두가 그를 불결하다 내칠 때, 바로 그때 무리 안에 있는 그가 무리의 논리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를 봐야 헐 것입지.'

스승은 오른손에 쥐고 있던 주장자를 바닥에 내리쳐 두 동강이를 냈다.

 

-스승은 이웃의 일상적인 친절에 현혹되지 말라 하셨소. 위기에 이르러 불의의 편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지 모른다고 하셨소이다.

아베스라의 말에 아오슈나르가 찬탄을 하였다.

-아, 깊은 가르침이외다!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쏘옥 들어오오. 그래서 나는 두려운 거요.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가시밭을 피해 가려 하는 건 아닌지 말이오. 정작 내가 돌을 던지는 그들 뒤에 숨어, 다리를 저는 나그네를 모른 척하지 않을까 무서운 거요.

-두려움은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북극성 같은 것일 수 있지요. 두려움 때문에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쓸 테니요. 그러니 자학할 필요도,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필요에 따라 지도를 보여주시는 큰 스승이 계시지 않습니까? 도식적이랄 수밖에 없는 말이지만.

아베스라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현실에 매몰되어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도(道)의 전모를 보기 어렵다고 하신 스승의 말씀이 떠올라, 지금 자신의 현실이해가 얼마나 터무니 있는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걸 위해 만행을 결심하긴 했지만 말이다.

 

병자의 초막에서 살아난 굴바하르는 난생처음 세포 구석구석으로 흐르는 평화를 느끼며 어쩔 줄을 몰랐다. 꿈인가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도 보고, 이래도 되나 싶어 도리질을 쳐보기도 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기분이어서 겨드랑이가 간질거리며 실실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웃다가 문득 가슴이 콩닥거리며 호흡이 빨라지고 몽실몽실 어두운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불안이었다. 두려움이었다. 이 묘하게 기분 좋은 감정이 영영 사라질 것만 같은······.

케르반 사라이의 늙은 하인이 던져두고 간 물과 난이 떨어져 갈 때쯤 굴바하르는 초막을 떠났다.

 

가지에 걸려 있는 자기 그림자

주섬주섬 걷어내 몸에 붙이고

새 한 마리 날아가네

날개 없는 그림자 땅에 끌리네4)

 

-아, 나는 굴바하르의 삶에서 신의 부재를 보았소. 인간의 영역 밖에 존재하시되 인간에게 끊임없이 간섭하신다고 믿어왔던 그분이 굴바하르에게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아팠소!

아오슈나르는 진심으로 아파했다.

-손을 내밀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분은 일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영의 접점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법이죠. 존재하시되 일하지 않음으로써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 오묘한 섭리를 알지 못하는 것뿐이지요. 그걸 알기 위해 기도하고 명상하는 수행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베스라는 말을 하면서도 헛헛함을 느껴야 했다. 수행의 끝은 있는 것인지, 그 끝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 것인지 자신으로서는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네가 허는 공부는 말입지, 눈으로 가늠할 수 읎기 때문에 말입지, 때로 허망의 늪에 빠져 어떤 사램은 종당 환속허기도 허고 말입지, 간혹엔 자신의 몸에 덧씌워진 미망의 껍질을 벗어 뻔지고 새 세계에 들어가기도 허는 게란 말입지. 허믄, 허망의 늪에 빠지지 않을라믄 멋을 해야 허는가! 절대자라 허는 그분만 치어다보믄 말짱 헛게가 된다 이게라. 나를, 자신을 보아야믄 헌다 이 말입지! 그분은 결과인 겟이라 이 말입지!'

 

아베스라는 '절대자가 나라는 과정의 결과'라는 스승의 말씀에 머리가 깨지고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었다.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그런 사유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이 역량으로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존재하시되 일하지 않음으로써 일을 하시는 분이라니! 그대의 교의는 믿음에 덧씌워진 관념을 깨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려. 언제 시간을 갖고 가르침을 나눠주기 바라오.

-아이구, 아이구! 시생은 그저 초조로부터 이어진 스승들의 말씀을 받아 읊었을 뿐인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행각승에게 가르침이란 말씀은 당치 않습니다. 굴바하르의 일로 심사가 무거워지신 듯하여 객쩍은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나저나 병자의 초막을 떠난 그녀의 삶이 궁금해집니다. 간단치 않았을 텐데요.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답니다. 그녀에게 병자의 초막은 환골탈태의 현장이었던 거지요. (계속)

 

--------------

 

1) 『조로아스터교의 역사』 (메리 보이스 저, 공원국 역, 민음사) 324쪽 야스나 기도문의 일부 '멀리 여행하고 돌아온 사제들(아트라반āthravan-)을 경배합니다'라는 구절에서 의미를 차용한다.

2) 고대 페르시아에서 처음 건설되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 지하관개수로이다. 아랍어로는 카레즈라 한다.

3) 낙타 대상들의 숙소.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 역참의 기능을 겸하였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4) 오규원 시집, 『두두』, 「새와 날개」 전문, 35쪽, 문학과지성사, 2008.

오낙영 사진.jpg

오낙영(글쓴이,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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